[철모에서 미사일까지] 선행 시제 개발

아르고 0 4651
[철모에서 미사일까지] 선행 시제 개발
동력체계 각각 다른 시제 1·2호 제작 토션바, 비틀림압력 5만회·8000㎞ 주행 견뎌내 수치해석 연구원, 2.0이던 시력이 0.7로 떨어져K-21 보병전투장갑차
신인호 기자 idmz@dema.mil.kr
 

 연구개발 단계에서 개발하고자 하는 무기체계를 설계상 제원에 맞춰 1대1 크기로 제작해 보는 것을 탐색개발(Exporatory Developmant)이라고 한다. 연구개발의 첫 단계에 해당된다. 이어지는 단계가 체계개발(Full Scale Development)이다. 설계와 함께 시제품을 제작해 기술시험 평가와 운용시험 평가를 거쳐 양산 예정인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단계를 말하는데, ‘한국형 장갑차’를 개발할 당시에는 선행개발과 실용개발로 나뉘어 진행됐다.

 선행개발이란 연구개발의 타당성 즉, 설계사항을 실증하기 위해 시제품을 만든 후 국방과학연구소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기술시험과 소요군 주관의 운용시험을 통해 군이 제시한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는지 확인하게 된다. 실용개발에서는 선행개발 단계에서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최종 요구성능에 맞춰 시제품을 제작한 후 역시 기술 및 운용시험 평가를 실시한다. 시험평가 결과에 따라 전투용으로 사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최종 판단하고 합격 판정을 받으면 제품규격을 확정해 양산(量産 Mass Product)에 들어가게 된다.

선행개발에 돌입

 장갑차는 기동성에 영향을 주면서 차량을 지탱하는 하부구조의 현수장치, 기동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체계(Power Pack), 몸통부를 이루는 동체(胴體), 화력장치 탑재부인 상단부로 구성된다.

한국형 장갑차를 이루는 주요 구성품으로는 동체를 비롯해 280마력(hp)의 엔진과 변속기, 보기륜(堡機輪 Road Wheel), 토션바(Torsion Bar), 궤도, 유격장갑판재, 연료여과기, 오일여과기, 오일냉각기, 교류발전기, 시동기, 종 감속기, 축전지, 히터, 배수펌프 등이 있다.

 실물 모형을 공개한 후 군 내외로부터 호평을 받자 크게 고무되는 가운데 선행개발에 돌입한 국방과학연구소가 시제를 설계·제작하면서 집중적으로 힘을 기울인 분야는 엔진과 변속기로 이뤄지는 동력체계, 토션바, 그리고 유격장갑판재 등이었다.

 국산 자동차의 국산화율이 50%를 넘지 못하던 시절, 모든 것이 녹록지 않았다. 우선 동력체계를 어느 회사 제품으로 탑재하느냐가 문젯거리로 등장했다. 최초 대우중공업의 엔진을 쓰기로 하고 이에 적합한 변속기를 찾아 결합하려 했다. 하지만 국산화란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국내에는 자동변속기를 설계하고 제작한 경험이 전무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 제품과도 결합시켜 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시제 2대를 제작하되 동력체계를 달리 탑재하기로 했다. 시제 1호는 엔진과 변속기 모두 미국제를 쓰는 미국형, 시제 2호는 대우중공업 엔진에 외국 변속기를 결합한 이른바 ‘한국형’. 국방과학연구소는 전 세계 유수의 변속기 제조업체를 찾았다.

강윤수 박사는 27개 업체에 280~350마력급 변속기 가용 여부를 묻는 서신을 발송했다. “결과는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회신이 두 군데에 불과했거든요. 미국의 DDA 사(社)와 영국의 SCG 사뿐이었습니다.”

한국형 동력체계의 변속기로 영국 SCG 사의 모델 T-300이 선정됐다. DDA 사의 모델 X200-3은 우선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1984년 당시 가격으로 40~50만 달러를 불렀다. 아연실색할밖에.  

 시제 2호 동력체계는 ‘곱게’ 결합돼 주지 않았다. 동력체계를 차체에 접합시키는 받침대가 계속 파손됐다. 초기 일반 트럭용 고무충격 흡수장치를 사용한 탓이었다. 차량에 엔진과 변속기를 탑재할 때 정렬(Alignment)도 쉽지 않았다. 최소 4시간,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걸리기도 했다. 벨(bell housing)을 제작해 입력 하우징과 일체화해 해결했다. 변속기 주 하우징 후면의 후면판도 운용 중 가스켓이 찢어지곤 했다. SCG 사에 개선을 요구했으나 별 반응이 없어 ‘목 마른 사람이 샘 파는’ 격으로 후면판과 주 하우징을 일체화시켜 가스켓을 사용하지 않는 형태로 개발했다.

수작업으로 토션바 설계

 장갑차의 동체 바닥에 위치하면서 주행할 때 보기륜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장치가 토션바다. 이는 현수장치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컴퓨터 보급률이 극히 낮았던 시기.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의 설계는 수(手)작업일 수밖에 없었고, 비틀림(torsion)이 강한 소재로 삼미특수강이 개발한 300M강을 선정했다. 한국형 장갑차의 비틀림 강도는 16만 PSI(Pound per Square Inch 단위 면적당 토션바에 걸리는 하중을 나타내는 단위)였다. M113 장갑차보다 2만 PSI가 높았다. 한국형 장갑차의 중량이 그만큼 더 나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형 장갑차의 토션바는 M113에 호환되지만, M113의 것은 한국형 장갑차에 호환되지 않는다. 사이즈와 함께 소재 선정에 이렇게 신경을 쓴 까닭은 육군이 운용하고 있는 400여 대의 M113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개발된 토션바는 시험 중 5만 회에 걸쳐 비틀림압(壓)을 가했는데도, 또 장착 시험 때 8000km를 주행했는데도 파괴되지 않는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구조 알루미늄 장갑판재의 경우 용접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대우중공업은 기술요원을 선발, 2개월간 해외교육을 가진 후 6개월간 갖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알루미늄 동체 구조물 제작에 성공할 수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특히 장갑차의 방호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강윤수 박사는 “방호력 설계 대상인 철갑탄과 장갑판재의 충돌 문제를 수치 해석하기 위해 씨름하던 김종배 박사의 경우, 연구소에 입소하기 전 시력이 2.0이었는데 0.7 이하로 떨어져 안경을 쓰게 됐다”고 회고하기도 했는데, 특히 장갑판재 방탄시험 때는 “사격장에서의 군기” 이상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고 한다. 또 -32도라는 저온환경에서의 방탄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엄동설한에 야간사격도 가져야 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은 1982년 9월 마침내 시제 1호를 낳았고, 두 달 뒤인 11월에 시제 2호를 선보였다. 시제 제작 완료 후 대우중공업 인천공장에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연구진, 그리고 국방부 관계자, 대우중공업을 비롯한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모여 고사(告祀)를 지냈다. ‘시험평가’라는 고난의 길을 가기 앞서 모두의 정성을 모으는 자리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초도순시

 1983년 4월 12일 당시 국군통수권자인 전두환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를 초도방문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업무보고와 함께 당시 연구소가 개발 중인 대표적인 무기체계로 ‘한국형 장갑차’를 선정,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한국형 장갑차의 축소 모형과 부주요 구성품은 물론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장갑차와 미국산 M113 장갑차의 시각자료를 함께 전시했다. 세 종류의 장갑차 제원과 성능을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업 출범과 관련해 이미 민성기 중령에게 설명은 들은 바 있지만, 모형과 사진 등을 통해 다시 한번 설명을 들으면서 ‘매우 흡족’해 했다. 특히 “민 실장, 이 부분을 ○○라고 하지?” 물으면서 “그렇다”고 하자 “하하! 나도 그 정도는 알지”하며 민 실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기도 했다. 전 대통령은 육군맹호부대 대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 M113 장갑차를 운용해 본 경험이 있는 터. 얼마 후 한국형 장갑차의 부품개발 지원금으로 약 6억 원이 추가 배정됐다. 
2010-03-15 09:29:25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