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자이푸르 마지막 마하라자의 세번째 왕비:가야트리 데비

아르고 0 3575
 
출처:  daum 카페 - 유럽의 왕실
 
인도 자이푸르 마지막 마하라자의 세번째 왕비:가야트리 데비|
 
(가야트리 데비는 전 세계 왕실미녀 TOP 10 에 들만큼
출중한 미모로 화제가 되었던 인도 왕비입니다.)
 
 
인도 상류사회의 선남 선녀 커플이었던 마하라니의 회고록입니다.
'내 사랑 인도'란 제목으로 한국판이 나왔는데 한국판엔 별로 사진이 없고, 영문판에는 사진이 풍부하더군요.
이 영문판은 오래되어서 구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태원의 외국 서적 헌 책방에서 기적적으로 건졌습니다.
헌책방이 좋은건 가끔 이렇게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이라니까요.
 
가야트리 데비란 이름의 이 인도 마하라니는 아예샤란 이름의 이슬람식 애칭도 갖고 있습니다. 인도가 해방되고 나서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었던 인물입니다.
호화로운 환경에서 자라나 결혼도 당시 인도의 왕자들 중 멋지기로 손꼽히던 인물 중 하나와 했고 결혼도 행복했던 한 마디로 평생 화려하게 살았던 인물.
주인공 가야트리 데비의 외가가 인도 마하라자 가문들 중에서도 손꼽히게 부유하고 위세있던 바로다 왕가여서, 회고록에선 바로다 왕가의 이야기도 잘 언급됩니다.
 
 좀 깨어있던 인물이던 외할아버지와, 그런 외할아버지와 결혼한 덕에 좀 자유를 누리고 나중엔 여성계에서도 비중있는 인물이 된 외할머니 이야기도 나옵니다. 19세기에 것도 인도에서 벌써 이 정도로 개명한 인물이 마하라자 중에 있었구나 싶던...그 때쯤이면 우리나란 아직 개화기로 서구 문물 수용 논쟁이 격렬할 때..
 
인도 왕가들은 동양권이라 그런지 대가 끊기면 친척 남자들 중에서 양자를 들여 대를 잇게 하기 때문에 가야트리 데비의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대를 이어 바로다 왕가의 마하라자가 되었던 인물. 영국 왕이 델리에 와서 접견식을 가졌던 델리 두르바르 때 이 외할아버지는 영국왕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불경'을 저질렀다고 해서 커존 총독에게 시달렸고 민족주의 신문들에선 영웅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손녀인 가야트리 데비는 그 건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인사할때 어디로 물러나야 하는지 절차를 잘 몰라서 한 실수였다며 물론 인도 독립을 바라긴 했지만 예의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보니 마하라자들의 칭호도 여러가지가 있더군요. 니잠, 가이크와르...
원래는 그냥 지방의 '태수'정도에 불과했는데 그 지방의 왕가가 된 사람들도 있고
모험가 출신이 세운 왕가도 있고, 족보가 라마야나에 나오는 전설의 인물 라마나 신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가문들도 있고.
화려했던 왕가의 생활 이야기와 행사들, 그리고 왕족들의 일상도 잘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건 생활감각...아무리 상류층이라지만 그 시대의 빈곤이나 사회상 같은걸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거의 구름위의 생활이더군요.
기차여행, 유럽여행 이야기, 접견 의식, 일상..
인도 왕가의 화려한 생활에 대한 묘사들이 장난아니더군요.
일반인들과는 다른 경제감각을 갖고 살고 있었군이란 생각...

식민지 시기였던 때에 이 정도였다면 전성기때는 얼마나 화려했을지...
그리고 식민지였던 인도의 왕가가 이 정도였다면 당시 상류층은 얼마나 화려했던 것인지...
화려한 인도 왕궁 생활, 럭셔리한 유럽생활 등을 거치면서 자라난 가야트리 데비는
오빠들의 친구였던 자이푸르의 마하라자 자이를 몰래 흠모하게 됩니다.

자이는 당시 인도 뿐 아니라 세계적인 폴로 선수로 유명했었던 인물.
인물이 잘생기고 사람들의 선망을 받던 마하라자. 그야말로 동화속 왕자님과 공주님의 결합.

그에게는 이미 왕비가 둘 있었으나 가야트리에게 청혼을 해서 가야트리는 그의 세번째 왕비가 됩니다.
위의 두 부인들도 다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 별 투기 없이 잘 지냈고 아들도 부모를 닮아 잘생겼습니다.
 
라자스탄 지역은 좀 계몽적이던 외가와 친가에 비해 여성 격리 전통이 엄했다는 것에서부터
시댁 궁중 법도에 대한 이야기, 결혼 절차 등이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라지푸트 쪽 귀족, 왕족 남성 중에는 조각 같은 외모의 미남들이 많다는데 사진이 별로 없어서 유감.
주인공의 남편 자이는 그다지 미남으로 보여지지 않지만 아들은 엄청 잘 생겼더군요.

결혼 후에도 화려하게 생활했던 이야기며 인도 독립 후 특권이 박탈되었을때
정부의 조치를 비판한 대목, 국회의원에 출마해 선거운동 하던 이야기 등이 펼쳐집니다.
 
 

1번 사진은 주인공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와 외할머니입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입니다.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는 그 당시 인도 공주로서는 드물게 연애 결혼을 해서 화제가 됩니다.
 
오빠의 친구였던 쿠츠 베하르 가문의 마하라자를 마음에 두고 이미 부모가 정해두었던 약혼자에게 파혼 편지를 보냅니다. 그래서 한동안 가문 위신을 실추시킬지도 모른다는 비난의 시선을 받고 놀라운 미모의 인도 공주가 자기 뜻대로 결혼을 관철하려 한다고 영국에서도 화제거리가 된 로맨스의 주인공. 그러나 감시 속에서도 연인들은 비밀리에 편지를 주고받고 결국 결혼을 허락받습니다.
후에 이 여성의 딸인 가야트리 데비도 오빠 친구인 자이푸르의 마하라자 자이와 연애 결혼을 하게 되고 이 여성 못지 않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합니다. (연애라고 해봤자 오빠 친구기에 얼굴을 볼 수 있었고 흠모하는 시선을 보냈는데 그도 마음에 두고 프로포즈를 해온 정도..)
결혼 후 세련된 생활방식과 우아한 패션으로 이름났던 여성. 사리를 두르고 앉아있는 외할머니는 법도에 엄해서 항상 내외 법칙을 엄하게 지켰던 바로다 왕비. 진보적인 남편의 지원을 받으며 바깥 출입도 할 수 있었고 여성권리에도 눈떴지만 그런 법칙은 엄하게 지켰던 여성
 
2번 사진. 쿠츠 베하르 왕가의 사진입니다. 가운데에 아기를 앉고 앉아있는 여성이 주인공 가야트리의 어머니.
3번 사진-16세때의 가야트리 데비. 사진 속 세 여성 중 맨 오른쪽에 있는 여성입니다. 이 집안 딸들은 다 단정한 미모네요.
4번 사진-결혼 후 남편과 함께 서구의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는 가야트리 데비입니다.

5번 사진-다이아몬드를 터번에 장식한 가야트리의 아버지입니다.
6번 사진-어렸을때의 가야트리 데비입니다.
7-영국의 서섹스에서 찍은 사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어린 가야트리와 형제들입니다. 어머니가 미인이네요.
8-쿠츠 베하르 왕궁의 모습입니다. 의외로 서구식이네요..글구 보면 19세기 후반은 동양 각국에서도 서구식 왕궁이 많이 지어진 시기였는지도..
 
 
9-쿠츠 베하르 왕실의 접견실로 향하는 입구입니다. 인도 마하라자 사진들 보면서 놀란건 궁전들이 19세기 들어오면서 서구식이 많아졌다는 것이었어요. 현대화(?), 인도식하고 절충해서 두 건축 방식을 아름답게 접목시킬 수 있는 건축가가 많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유명한 타지마할에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건축가가 참여했다던 설이 있던데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서구 건축가는 또 없던 것일까요. (타지마할의 수석 건축가는 페르시아인이었음)

10-여주인공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사진은 30년대에 찍힌 것. 인도 상류사회에서 그녀가 주최하는 파티와 살림감각, 매력으로 유명했던 인물.
11-가야트리 데비의 남편이 될 자이 왕자의 어린 시절 모습입니다. 왕가의 방계였는데 양자가 되어 마하라자에 오릅니다. 1921년 입양 당시 10살때의 자이입니다.
12-입양이 되고 나서 1년 후, 왕가의 정기행사중 하나인 호랑이 사냥에 참가해서 처음 잡은 호랑이 앞에 선 자이의 모습입니다.
13-1961년 자이푸르를 방문한 영국 여왕과 가야트리 데비 가족이 찍은 사진입니다.
14-가야트리 데비와 결혼하던 날, 결혼 장소에 도착한 신랑이 코끼리에서 내리는 모습입니다.
15-결혼식이 한창 치러지던 도중에 찍힌 사진 중 하나. 행복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새 부부의 모습입니다.
16-신혼 여행 당시의 가야트리 데비와 남편입니다.
17-결혼 후 라지푸트 쪽 여성 의상을 입고 춤에 참가한 가야트리 데비
18-가야트리 데비의 아들이 자기가 처음 잡은 호랑이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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